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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왜 부끄러움이 되었나ㅣ그 시작은 미안함

_교문 밖 사색가 2024. 11. 4. 14:04

섹스는 왜 부그러움이 되었나ㅣ그 시작은 미안함

 

 

섹스는 지금은 부끄러운 행위라고 인식되지만 그 시작은 가볍게는 미안함, 크게는 죄인이 된 느낌으로 시작되었을 거다.

 

 

 

인류가 수렵 채집 생활을 했을 때는 아마 성행위는 그리 부끄러운 생활이 아니었을 거다. 아마 동굴에서 남녀 1 : 1 로 하더라도 꼭 한 쌍이 아닌 여러 쌍들, 혹은 집단 성행위까지도 동시다발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소리 또한 동굴이다 보니 더 크게 울려 퍼져서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생활환경이었을 거다. 그건 지금 동물들이 굳이 번식행위를 숨어서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즉, 낮에는 먹이를 찾는 행위가 당연하듯 밤에는 섹스가 (종족유지) 본능으로 당연한 행위였을 거다.

 

수렵 채집 시기는 인간은 지금의 문명인이 아닌 원시인의 상태였고 원시인은 조금 불편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동물들과 동격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옷이 있었다고 해도 그건 털이 없는 인간이 피부가 약하다 보니 외부 공격에 대한 방어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굳이 부끄러움을 우선으로 생각해서 만들어진 발명품은 아니었을 거다.

 

심지어 옷의 시작이 생식기부터 감췄다는 것은 털이 없는 인간이 약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자손의 번식이 필요하다는 본능으로 인해서 만들어졌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은연중 아담과 이브의 내용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기초적인 관념의 결합으로 옷의 시발점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우리의 조상은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밀의 노예의 시대인 농업 시대를 12,000년 전에 맞이했다. 아마 초기 인류는 공동으로 농업을 시작했을 거다. 그들에게 사유 재산이라는 의미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함께 농사를 하다가 임신을 하면 노동력은 감소되었을 것이다. 일단 임신한 여자부터가 홀몸일 때와는 다른 움직임이었을 것이고, 아기를 낳는 기간이 되면 조심스러워지는 시점이 오게 되어 노동력은 더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출산을 하면 그 아기를 돌봐야 하기에 이 기간에는 노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피임의 개념도 없었고 섹스는 밤마다 할 수 있는 놀이였을 가능성으로 본다면 임신도 거의 일상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임신을 하고 출산은 한 시점에는 노동력의 반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건 농사에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그래서 아마 공동양육 시스템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젖을 뗀 아이들은 노동력이 약한 할머니나 장애가 있는 동료들이 맡아서 키우는 시스템이 도입되었을 거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분명 사고가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자녀의 부모들은 속상한 마음이 들게 되어 개인적을 키우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을 거다. 그렇게 되어 사유재산이라는 개념도 생겨났을 거라고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유재산과 공동양육 시스템 도입 이전에는 이웃끼리 서로가 조심하는 문화가 먼저 확산되었을 거다. 사유재산을 공평하고 공정하고 아무도 불만 없이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서로가 조심하는 문화는 꽤 오랫동안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조심하는 문화란 자식을 필요한 만큼만 가지려고 노력하는 문화를 말하는 거다. 다시 말해서 자녀가 없다면 종족 유지가 되지 않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고 필요만큼만 낳아서 노동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면서 종족도 유지하자는 방향일 거다. 쉽게 생각하면 남자아이 1명과 여자아이 1명을 낳으면 종족이 유지가 되기에 한 가구당 이걸 기준으로 하되 어릴 때 맹수나 질병으로 죽는 경우를 대비해서 한 두 명 정도 더 낳을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을 거다. 

 

하지만 제대로 이행될 리 만무한 제도(약속)였을 거다. 지금 시대도 제대로 되지 않는 출산 시스템이 그 당시 무지에 가까운 성의 지식으로는 제대로 될 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제도가 잘못된 제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다. 농작물을 공평하게 나누듯 이 제도도 공정에 기해 만들어진 것 정도는 이해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다섯째, 여섯째 연년생을 낳거나 혹은 계속 남자 아아나, 여자 아이만을 낳게 되는 경우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자식을 계속 가져야 하는 겸연쩍은 상황도 생겼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운이 따라준 집은 아들과 딸을 골고루 낳은 집도 있었을 거다. 그렇게 되면 규칙(제도)을 지키지 못한 집은 지킨 집에 대한 미안함이 생겨나게 된다. 본의 아니게 노동력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아무리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제도의 내용은 공평과 공정한 내용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상태라는 것은 다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초기 농사일은 지식이 없었기에 한 해 한 해가 중요했을 거다. 한 번 망치면 그 해에는 거의 굶다시피 하는 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한 사람의 일손은 천금과 같은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입이 하나 더 늘었다는 현실은 그들을 더 가혹하게 만들었을 거다. 그러면 더욱더 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까지 굶어 죽는 꼴은 보기 어려우니 풍년이라는 옆마을을 찾아가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굴욕도 감수해야 했을 가능성도 높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라도 먹을 것을 빌릴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빌리지 못할 경우는 아마 약탈 내지는 전쟁도 감수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본의 아니게 폭력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일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행위였다.

 

모든 것은 농사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고 우리 마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만든 제도인데 약탈과 집단 싸움의 상황까지 오면 되려 지금 당장 필요한 인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죽은 이의 자식이 노동이 가능할 때까지는 최소 5년 이상은 기다려야 아버지의 노동력을 대신할 수 있는 상태라면 5년 동안 한 사람의 천금 같은 노동력을 잃게 되었다.

 

근데 마침 죽은 사람이 제도를 잘 지키는 사람의 가장이라면 어떨까? (불가피하게) 제도를 어긴 사람로 인해서 벌어진 그 약탈(혹은 전쟁)로 인해서 엉뚱한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제도를 어긴 사람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은 아니지만) 이건 미안함을 넘어선 죄인이라는 느낌까지 갖게 만든다.

 

초기 농사 시기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면 그래서 다시 안정을 찾았다면 아마 인류는 자식을 낳는다는 공정함이라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밤에 생각 없이 하는 섹스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고 대신 다른 일을 찾거나 임신을 하지 않고 섹스를 하기 위한 체외 사정 같은 것도 생각해 냈을 거다.

그래서 밤에는 섹스 대신 농사에 더 필요한 기구를 만들어 냈을지도 모르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도 고안해 냈을지 모른다.

 

즉 지금 인류가 섹스에 대한 고지식한 면을 보이고 섹스를 해도 괜찮은 대상과의 행위도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는 이유의 근본적인 원인은 섹스 자체가 옷을 벗고 하는 행위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부 에너지(노동력) 문제일 수 있다는 뜻이다.